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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우리가 잘 몰랐던 개념과 관념과 상식

by Dasan Books 2026. 10. 6.

 

 

 

저자: 권석우 / 

사양: 153×225(신국판) / 1도 / 204쪽 / 

정가: 18,000원 / 

발행일: 2026년 9월 30일 / 

ISBN: 9791124671054 03100 / 

 

 

 

영문학자 권석우 교수의 신간.

전적인 오역은 아니지만 번역과 문화적 해석의 차이에 여전히 관련되어 잘못 알려진 개념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책이다. 자주 쓰는 말이지만 평소에 잘 모르고 사용하고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말들, 뜻을 전혀 모르고 쓰는 말들, 또 속뜻도 모르고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쓰는 말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목차

Ⅰ. 서양 종교와 사상

가롯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밀고하였는가? /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 죄의 삯은 사망인가 / 결과는 원인을, 현재는 과거를, 미래는 현재를 바꾸는가? / 예수께서 가족이 원수이고 세상에 검을 주러 왔노라 하신 이유 /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 정말로 ‘행복한 타락’(felix culpa)인가? / 예수는 장사 지낸 지 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깨어났는가? / 베드로가 예수를 3번이나 부인한 이유, 예수께서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한 까닭 /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는 까닭은? / 오병이어(五甁二魚)에 대한 단상 / 천 년 전 조상이 중요할까? / 오난이즘(onanism)의 유래와 야곱의 아들 유다의 근친혼 / 포니 국민차에는 왜 물고기(ichthys)가 새겨져 있었는가? / 미신(superstition)은 미신(迷信)인가, 과신(過信, 과한 믿음)인가 / 종교의 뜻 / 천국 가려고 하나님을 믿는가? / 예루살렘, 이슬람, 수니‑시아파의 의미 / 삼손이 델릴라에게 유혹당한 어원학적 이유 / 인류는 정말 카인의 후예로 악한 존재인가? / 삼위일체와 사위일체 /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가(credo quia absurdum)? / 영생은 좋은 것인가? / 죽음이 신의 선물인 까닭 / 아담은 가래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 / 다윈은 인류가 침팬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 에덴동산에서 우리가 반드시 나와야 했던 까닭과 나훈아와 배종옥의 “벗어버린 아담과 이브처럼”

 

Ⅱ. 서양 신화

아테네의 왕 에릭토니오스는 처녀신 아테나의 아들이었는가? / 하늘보다 하늘만큼 땅이 중요한 이유는? / 거신족(티탄)과 거인족(기가스) 간의 다른 점 / 평화의 신 에이레네는 왜 12지신이 아니었는가? / 아리안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 초야권은 정말로 존재했는가? / 안식년의 어원 / 사유와 월경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 오뒷세우스가 율리시즈로 변한 까닭은? / 제우스는 정말 바람둥이였는가?

 

Ⅲ. 동양 문화

만다라와 분당의 팡테옹 아파트 / 달마는 진짜 소림사를 창건했는가? / 달마(←다르마)의 뜻은? / 통도사와 부석사에 본존불이 없는 까닭 / 부처가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 / 왜 사냐건 웃지요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깨달은 자들이 땅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 보살 예수의 뜻은? / 탓하는 문화와 내 탓(mea culpa)의 문화 / 선불교와 동성애 담론의 유사성과 차이 / 장자는 정말 부인이 죽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좋아했는가?

 

Ⅳ.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

세상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 / 묵시(apocalypse)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 헤겔의 “아름다운 영혼”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 /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가? / 중용과 무위, 메덴 아간의 유사성 /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 / 시간이라는 아포리아(難題, 不可解) /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인가(philosophy), 로고스에 대한 사랑인가(philology)? / 도그마는 “억지 의견”인가? /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라고 한 이유 / 악법은 법이 아니다 /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인가 / 부인하고 잠을 자면 근친상간인가? / 60진법의 유래와 환갑의 유사성 / 동전을 원(圓, circle)으로 만든 까닭은? / 콘클라베 / 베트남과 베트콩의 어원 / 버스킹과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저자

권석우

서울시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연세대 영문학과 학사, 석사,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CUNY Gradaute Center) 석사, 박사(MPhil, PhD - 박사논문 『폭력을 통한 타락 - 어네스트 헤밍웨이』). 서울시립대 인문대학장(2017.3-2019.2), 국제언어인문학회 회장(2020.3-2022.2),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2021.1-2024.2) 역임.

미국소설과 미국학을 전공했으며, 관심사는 전쟁과 죽음, 신화와 종교, 그리고 동서양의 지적 전통 등이다. “폭력의 탈신화화를 위하여: 미 라이(My Lai) 학살로 돌아보는 미국의 역사,” “노근리 학살에 나타난 인종주의”, “미국학의 역사적 전개”(한국아메리카학회 우암논문상), “한국의 헤밍웨이 읽기”, “우로보로스의 현상학”(2023년 연구재단 우수성과 50선, 교육부총리 표창), “『금강경』의 제상비상과 『반야심경』의 色空의 의미로 둘러보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이 우리에게 주는 생사의 의미,” “용수의 중도연기와 승조의 비유비무와 장자의 비비유비비무와의 비교연구,” “장자의 생사관에 비추어본 현해(縣解)와 영녕(擰寧)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 50여 편의 논문과, 2024년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수상작인 “꼬리 먹는 뱀 우로보로스 사유와 서양 문명 비판” 시리즈 제1권 『선악과와 처녀 잉태: 유대-기독교 문명』(2023 세종 우수학술도서), 제2권 『메두사와 팜므 파탈: 지혜와 생명의 여성』, 제3권인 『전쟁과 평화, 사랑과 죽음: 우로보로스와 탈(脫)우로보로스』 등과 4권의 공저가 있다. 시집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2024)를 출판하였다. 『번역이 바꾼 세계사』, 『우리가 잘 몰랐던 개념과 관념과 상식』, 『바람이 불면 왜 살아야 하는가 - 문학의 필수 개념과 서양 문학 산책』 그리고 『핵심 쟁점으로 읽은 동서양 사유와 문화』(다산서림)가 2026년 9월, 2026년 10월에는 『영생과 윤회, 있어도 없어도 좋다 - 영문학자가 읽은 장자의 사생관』(연대출판문화원), 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서출판 사유악부)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다산서림)가 2026년 가을과 겨울에 각각 출간된다.

 

본문에서

56쪽

9.11 등 이슬람 전사들의 순교 이유 중의 하나가 72명의 처녀를 주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면, 그러한 신앙은 알라를 욕되게 하는 신앙일 수도 있다. 기도를 들어 주시든 말든, 십일조의 몇 배를 곳간을 열 배로 채워 주시지 않아도 신에 대한 순종과 사랑은 그것 자체로 족하다는 사실을 성녀 라비아의 기도문은 역설하고 있지만, 이러한 믿음과 신앙의 차원을 몸소 체득하고 실천한 이는 드물다.

 

68쪽

웅녀의 후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위일체로 하여 천지와 가족의 기본 형태를 부모와 딸 아들로 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을 가부장제의 권위에 매혹당한 교부 철학자들과 이상하게도 남아 존중 사상에 찌들어 있었던 조선의 유학자들과 비록 미온적이었다 할지라도 일부 불교 수행자들은, 여성과 모성을 인류의 중추적 추동력으로 삼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안 그럴 것 같았던 불교는 말법(末法)시대를 지나 때가 되면 아주 나중에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알게 된다는 식으로 논의를 피해 갔다. 여성이 저자인 옛날 불경은 승만경(勝鬘經) 하나만 전해져 내려온다.

 

85쪽

땀 흘리는 노동이 없다면 우리는 에덴이 제공하는 풍요에서 헤어나지 못해 우울과 권태에 지쳐 지금의 북구 유럽이 이러한 전조를 보이고 있듯 자살을 꿈꾸기도 하며,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영생의 지겨움 속에 또 불교 용어를 사용한다면 윤회의 공포에 시달려, 푸근한 안식을 찾지 못하게 된다.

 

114쪽

영화 《오뒷세이아》(2026)로 관련 번역서가 날개 돋히듯 팔리고 있다고 한다. 헤세(Herman Hesse, 1877∼1962)의 『싯다르타』(1922)와 더불어 AI가 화두가 된 한국사회의 고무적인 현상이다. 참고로 말하면 “오뒷세이아”라는 뜻은 “오뒷세우스에 관한 것”이라는 뜻이 후대에 “오뒷세우스의 노래”로 변하였으니, 작품 『일리아스』가 “일리움(트로이의 옛 지명)에 관한 것”에서 “일리움의 노래”인 영어명 일리아드로 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문호 조이스(James Joyce)는 『율리시즈』(1922)라는 작품으로 소설을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분명히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그 오뒷세우스가 맞는데 율리시즈로 나오다니, 그냥 로마 시대에는 이렇게 다르게 불렀다고 단순하게 넘어가기에는 뭔가 켕기는 것이 있었다.

희랍어에서도 방언(Attic, Doric, Ionic 등)에 따라 자음 간 변이가 있는데 오뒷세우스의 “d”음과 율리시즈의 “l”음도 방언변이(dialectal variation)의 일종으로 볼 수 있어, 일단 “Olysseus”를 상정해 보면 “Ulysses”는 아주 사소한 모음 변이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Olysseus → Odysseus.” “Olysseus”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었으나, “Odysseus”로 굳어져 전해지고 있는 건 호메로스의 방언이 그랬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이런 자음/모음 변이는 철자(orthography)가 정착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아주 흔한 것이었으므로, 그저 약간의 추론만으로 해결되는 경우에 속한다. 라틴어로는 희랍어 “Olysseus”에서 O와 U의 모음 변이로 보아 “Ulixes”로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영어 “Ulysseus”가 나온다.